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제목 [인터뷰] 이병헌에게 한계란 없다
등록일 2020-01-20 조회수 82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매 작품, 관객의 기대 그 이상을 충족시키는 배우 이병헌이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로 또다시 인생 캐릭터 탄생을 알렸다.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으로 분한 그는 눈빛과 표정만으로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극을 이끈다. 역시, 이병헌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충식 작가의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한국 근현대사 중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꼽히는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다.

이병헌은 지난해 12월 개봉해 8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 김병서) 이후 한 달 만에 관객 앞에 선다. 극 중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을 연기한 그는 인물의 변화하는 심리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만큼 애드리브를 시도하지 않는 등 신중한 접근과 고민으로 캐릭터를 완성해 이목을 끈다. 이병헌의 정통 연기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이병헌은 ‘남산의 부장들’을 향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우민호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열연이 환상의 시너지를 완성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연기에 대해서는 “감독의 연출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연기 인생 30년,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는 이병헌을 만났다.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예고한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예고한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완성된 영화는 어땠나.
“기술 시사 때 보고 되게 세련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 작업에서 공을 들인 덕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제작진과 배우)의 판단인 것이고, 처음 공개된 것이 언론배급시사회인데, 주변에서 워낙 잘 봤다고 해주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소재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고민은 있었다. 한쪽에 선 혹은 정치적인 시각이나 견해가 느껴지는 영화일까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고 우민호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이 영화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들을 더 중요하게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드라마일 수 있겠다 싶었다. 드라마틱한 부분이 좋아서 결정을 했다.”

-영화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호흡이 잘 맞더라.
“워낙 에너지가 좋고, 연기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하는 배우들이다. ‘남산의 부장들’ 현장에서 하루하루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었다. 정말 신났고 이런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갖게 될 힘이나 에너지가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대감이 컸다. 절제된 감정들과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많은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힘이 되게 중요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모든 배우들이 엄청 잘 해내셨다고 생각하고, 그 시너지가 분명히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근현대사의 가장 중요했던 사건이고 실존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야 했고, 행동과 말 등이 이미 다 정해져있기 때문에 배우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뭔가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그랬다. 너무 과잉이 아닐까, 더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너무 누르고 있는 건가 등에 대한 고민들이 끊임없었다. 애드리브는 생각도 못 했다. 틀에 갇혀서 해야 하는 지점이 많았고,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

-극 중 김규평이 머리를 넘기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도 시나리오에 있던 건가.
“그 부분은 (내가) 설정을 하긴 했다. 김규평의 모티브가 된 김재규 씨가 항상 깔끔하고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법정 영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자란 머리를 계속 뒤로 넘기더라. 그 영상을 보고 저런 습관을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서거나 날카로워져야 하는 신에서 영화적으로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김규평의 선택이 나라를 위해 독재를 끊기 위해서인지, 질투와 시기, 배신감에 대한 분노였는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기를 했나.
“그 부분에 대해 실제로도 의견이 분분하지 않나. 대의였을지 개인적인 감정이었을지, 계획된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영화라고 해서 다르게 규정짓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민호) 감독도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더 이야기가 많아질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랐다. 나는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연기를 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기도 했다.”

-클로즈업이 유독 많았는데,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김규평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
“‘달콤한 인생’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마법 같은 효과를 준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직접 보고 느끼는 감동보다 스크린으로 봤을 때 훨씬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내가 그 분위기만 풍기고 있어도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TV로 보면, 그렇게 안 느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관객들이 극에 빠지는 게 아니라 뒤로 물러나게 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상황 속에서 인물이 가져야할 감정을 충만하게 갖고만 있다면, 눈빛이나 표정을 통해 충분히 나타날 거라는 믿음으로 연기를 한다.”

-박통을 연기한 이성민과 곽상천으로 분한 이희준의 열연도 돋보였다. 어땠나.
“(이성민과) 첫 촬영하는 날 분장하고 나오는데 ‘헉’ 했다. 모습도 그렇지만, 리허설할 때 대사 첫 마디에 ‘우와, 너무 좋다’했다. 정말 연기 에너지가 좋은 사람과 연기를 할 때 느껴지는 흥분이 있는데, (이성민이) 정말 잘 하는구나,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희준은 평소 살이 찐 체질도 아닌데, 25kg를 늘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늘려서 현장에 와서 걸음걸이부터 목소리 톤까지 평소 이희준한테 보지 못한 모습으로 호흡까지 딸려가면서 대사하는 걸 보면서 몸무게만 늘린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겉으로는 웃고 밝지만 속으로는 많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배우였다.”

-매 작품,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배우 중 하나다.
“외부에서 그렇게 평가를 하면 첫 번째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하나는 기분 좋다.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매 작품을 할 때마다 똑같은 각오와 똑같은 정도의 몰입과 노력을 한다. 감독의 편집이라든지 후반 작업에서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점점 높아지는 기대치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사람이니까 부담감이 생길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런 것에 자꾸 갇히긴 싫다. 부담만 갖고, 뭔가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자유롭게 못 움직에 하는 것 같다. 편하게 풀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경직된 느낌이 들 때마다 의도적으로 어깨에 힘도 빼고 풀어놓는다. 사랑을 받을 때도 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 않다고 생각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 더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은 털어버리려고 한다.”

-캐릭터 그 자체로 분하는 비결이 있다면.
“온전히 그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또 내가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의 감정이 뭔지를 정확하게 캐치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하나하나 집중하고 몰입하다 보면, 그래도 실망스러운 캐릭터가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남산의 부장들’ 외에도 설 극장가에 다양한 작품들이 개봉하는데.
“굉장히 결이 다르고, 장르가 다른 영화이기 때문에 연휴 동안 긴 시간이 있으니까 골고루 다 보셨으면 좋겠다.”